솔직히 고백하겠습니다.
저는 학원을 줄이면 아이가 뒤처질까 봐 두려웠던 부모였습니다.
초등 4학년 때부터 수학, 영어, 논술, 태권도까지 주 4개 학원을 돌렸습니다.
학교 끝나면 곧바로 학원 셔틀을 타고, 저녁 8시가 넘어서야 집에 돌아오는 아이. 밥 먹고 학원 숙제하면 벌써 10시였습니다.
"오늘 학교에서 뭐 배웠어?"라고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늘 같았어요.
"몰라. 기억 안 나."
그런데요, 월평균 60만 원이 넘는 사교육비를 쓰면서도 성적은 제자리였습니다.
아이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 저는 처음으로 '이게 맞나?'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용기를 내서 학원 4개 중 2개를 끊고 현재는 하나만 다니고 있습니다. 결과요? 놀랍게도, 우리 아이는 학원을 줄인 뒤 오히려 성적이 좋아졌습니다. 물론 모든 아이에게 같은 결과가 나타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우리 아이에게는 스스로 공부하는 시간이 늘어난 것이 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그 과정에서 제가 깨달은 것들을 솔직하게 나눠보려 합니다.

학원을 많이 보내면 성적이 오를까? — 조사한 자료, 데이터가 말하는 불편한 진실
부모라면 누구나 '학원 하나라도 더 보내야 뒤처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잖아요.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연구 결과는 우리의 직감과 좀 달랐습니다.
한국, 일본, 핀란드 고등학생의 PISA 데이터를 분석한 성기선·김준엽(2010)의 연구에 따르면, 세 나라 공통적으로 사교육 참여 시간이 늘어날수록 과학 성취도는 오히려 낮아지는 경향을 보였습니다(성기선·김준엽, 「고등학생들의 사교육 참여 시간과 학업성취도와의 관련성 비교연구」, 교육사회학연구, 20(1), 2010, pp.103-126).
"그건 고등학생 얘기 아니야?"라고 생각하실 수 있어요. 하지만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종단 분석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학원과 과외 시간이 늘수록 성적이 올라가긴 하지만, 국어와 영어 과목에서는 자기주도학습의 효과가 학원·과외 효과보다 더 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한국교육과정평가원,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종단자료에 기반한 학업성취도 변화 추이 분석」, RRE 2015-1).
즉, 단순히 학원에 오래 있는 것만으로는 성적 향상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학원을 줄이고 나서 우리 집에 생긴 변화 3가지
1. 아이에게 '빈 시간'이 생겼다
학원 2개를 끊자마자 가장 먼저 달라진 건, 아이에게 하루 2시간 정도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처음 일주일은 솔직히 불안했습니다. 아이는 그 시간에 만화책을 읽거나 멍하니 있었거든요. '역시 학원 다시 보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백 번은 들었습니다.
그런데 2주차부터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수학 문제집을 꺼내더라고요. "이거 학원에서는 넘어갔는데 나 아직 모르겠어"라면서요. 자신이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스스로 알아차리는 순간, 진짜 공부가 시작됐습니다.
2. 수면 시간이 늘었고, 집중력이 달라졌다
학원을 줄이면서 취침 시간이 10시 반에서 9시 반으로 한 시간 앞당겨졌습니다. 이게 생각보다 엄청난 차이를 만들더라고요.
2025년 국가데이터처 조사에 따르면, 초·중·고 학생 중 성적 상위권 학생의 평균 수면 시간은 7.7시간으로 가장 길었습니다. 반면 고등학생의 44%는 하루 6시간도 못 자고 있었고, 수면 부족의 원인 중 55.9%가 학업 관련(가정학습 23.7%, 학원·과외 18.2%, 야자 14.0%)이었습니다.
해당 조사에서는 충분한 수면을 취한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학업 성취를 보이는 경향이 확인되었습니다. 수면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에요. 낮에 배운 내용을 뇌가 정리하고 장기기억으로 전환하는 시간입니다.
학원에서 졸면서 듣는 2시간보다, 푹 자고 맑은 머리로 집중하는 30분이 공부 효율 높이는 법으로서 훨씬 효과적이었습니다.

3. "왜 틀렸지?"라는 질문이 시작됐다
학원 다닐 때 아이는 틀린 문제를 빨간펜으로 고치고 넘어갔습니다. 선생님이 풀이를 알려주니까요. 그런데 혼자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아이가 달라졌어요. 틀린 문제 앞에서 "내가 왜 이걸 틀렸지?" 라고 스스로 묻기 시작한 겁니다. 머리를 쥐어짜고 모르면 그땐 답을 찾아보고 다시 비슷한 문제를 풀어보더라구요.
이걸 교육학에서는 메타인지 학습법이라고 부릅니다.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스스로 파악하는 능력이에요.

메타인지가 IQ보다 성적을 더 잘 예측한다
네덜란드 라이덴 대학교의 마르셀 베엔만(Marcel Veenman)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IQ는 학업 성적의 약 25%를 설명할 수 있는 반면, 메타인지는 성적의 약 40%를 설명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일부 다른 연구에서도 IQ보다 메타인지가 학업 성취를 더 크게 설명하는 것으로 보고되었습니다.
메타인지 학습법의 핵심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 자기 평가: "이 단원은 내가 어디까지 알고 있지?"
- 계획과 실행: "오늘은 모르는 부분 위주로 30분만 집중하자"
- 점검과 조절: "풀어봤는데 아직 헷갈리네, 한 번 더 보자"
학원 수업 중심의 학습에서는 이러한 과정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선생님이 계획을 세우고, 진도를 나가고, 풀이를 알려주니까요. 아이는 수동적으로 따라가기만 하면 되죠. 하지만 이렇게 하면 '공부 근육' 자체가 길러지지 않습니다.
반면 메타인지 전략을 활용한 학습 프로그램에 대한 메타분석 연구에서는, 학업·인지·정의(태도)·행동 영역 모두에서 유의미하게 큰 효과 크기가 나타났습니다(이혜은, 「메타인지전략의 효과에 관한 메타분석」, 서울대학교 교육연구소).
특히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 가장 많았다는 점도 의미가 있습니다.
자기주도학습 방법은 어릴 때부터 연습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효과적이라는 뜻이니까요.
그러면 학원을 다 끊으라는 건가요? — 오해를 풀어드립니다
여기서 한 가지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자기주도학습 = 학원을 안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주도학습은 '독학'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에요. 학원을 다니든, 인강을 듣든, 과외를 받든 상관없이 아이가 자기 공부를 스스로 계획하고 점검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저도 6학년이 된 우리아이 수학 학원 하나는 유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학원 수업을 아이 공부의 '전부'가 아니라 '도구 중 하나'로 바꾼 겁니다.
중요한 건 학원의 개수가 아니라, 아이가 자기 공부의 주인인가 아닌가입니다.
부모가 할 수 있는 실천 가이드 5가지

학원 줄이기 성적 향상이 가능했던 건, 단순히 학원을 끊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빈자리를 어떻게 채웠느냐가 중요했어요. 저와 아이가 함께 만들어간 방법을 공유합니다.
✅ "오늘 뭘 공부할지 네가 정해봐"
부모가 시간표를 짜주면 아이는 시킨 대로 하는 데 익숙해집니다. 끝내는 안하더라구요. 스스로 시간표를 짜라고 했습니다. 대신 "오늘 수학 50분, 영어 50분 할건데, 뭐부터 할래?" 같은 선택형 질문을 던져보세요. 아이는 스스로 우선순위를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작은 선택이 자기주도성의 시작입니다.
✅ 2. "몰라도 괜찮아" 분위기 만들기
메타인지의 출발점은 "나는 이걸 모른다"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모른다는 걸 창피하게 느끼는 경우가 많아요. 처음에 저희 아이는 "엄마, 나 머리가 멍청한가 봐."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 틀린 문제를 찾아냈다는 건, 이제 그 문제가 네 것이 된 거야. 충분히 잘하고 있어"라고 하였습니다. "틀려도 괜찮아, 모르는 걸 찾은 게 오히려 잘한 거야"라는 메시지를 반복해주세요.
✅ 3. 결과보다 과정을 물어보기
"시험 몇 점 받았어?" 대신 "어떤 문제가 어려웠어?", "그 문제는 어떻게 풀었어?"라고 물어보세요. 이 질문이 바로 공부 효율 높이는 법의 핵심인 메타인지를 자극하는 대화입니다.
✅ 4. 수면 시간 사수하기
초등학생 권장 수면은 8~10시간입니다. 학원 때문에 취침이 밀린다면, 학원 스케줄을 아이의 수면 시간에 맞춰 조정해보세요. 수면은 공부의 방해가 아니라 공부의 일부입니다. 예전에 우리아이는 아침 수업시간에 졸고 있던 아이였더라구요. 선생님의 수업의 집중을 못하고 학원수업에만 집중을 했으니 오히려 학습 효율을 떨어뜨리는 상황이었습니다.
✅ 5. 주 1회 '공부 점검 시간' 갖기
일요일 저녁, 10분이면 됩니다. "이번 주에 뭘 공부했어?", "다음 주에는 뭘 해볼까?"만 물어보세요. 그 다음 계획을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계획-실행-점검의 사이클을 아이 스스로 돌리는 습관, 이게 진짜 자기주도학습 방법의 핵심입니다.

사교육비 월 60만 원 시대,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2026년 3월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사교육에 참여하는 학생의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60만 4,000원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습니다. 월 100만 원 이상 쓰는 가정의 비율도 계속 늘고 있다는 걸요.
그런데 이 돈을 쓰면서도 아이가 "왜 공부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면, 뭔가 방향이 잘못된 거 아닐까요?
저는 사교육비 줄이기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아이가 자기 공부에 주인의식을 갖게 만드는 것, 그게 목적이었어요. 학원을 줄인 건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따라온 결과일 뿐입니다.
사교육비 줄이기의 진짜 핵심은 돈을 아끼는 게 아니라, 아이에게 시간과 생각할 여유를 돌려주는 것이라고 지금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학원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할 시간과 자신을 돌아볼 기회였습니다.
규담라이프랩의 한 줄 요약
공부는 시간 싸움이 아니라 '인식 싸움'입니다. 아이가 스스로 "나는 이걸 모른다"고 인식하는 순간, 진짜 공부가 시작됩니다.
📚 참고 자료
- 성기선·김준엽(2010). 「고등학생들의 사교육 참여 시간과 학업성취도와의 관련성 비교연구: 한국, 일본, 핀란드 과학성취도를 중심으로」. 교육사회학연구, 20(1), pp.103-126. DOI: 10.32465/ksocio.2010.20.1.005
- 한국교육과정평가원(2015).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종단자료에 기반한 학업성취도 변화 추이 분석」. RRE 2015-1.
- 이혜은. 「메타인지전략의 효과에 관한 메타분석: 집단설계연구와 단일사례연구」. 서울대학교 교육연구소.
- Veenman, M. V. J. et al.(2006). "Metacognition and learning: Conceptual and methodological considerations." Metacognition and Learning, 1(1), pp.3-14. DOI: 10.1007/s11409-006-6893-0
- 국가데이터처(2026). 「2025년 초중고 사교육비조사 결과」. 2026.03.12 발표.
- 경향신문(2026.03.12). 「지난해 사교육비 지출 5년 만에 꺾였지만… 고소득자 사교육비는 더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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